Praise for Tanya Ko’s “Comfort Woman”:

“Great injustices are difficult to render in small literary spaces, but Tanya Ko finds the right tone––sensitive, intimate, yet restrained. In sparse, precise scenes, ‘Comfort Woman’ both informs and moves us in unforgettable ways.”  – Leonore Hildebrandt, Creative writing faculty, University of Maine

“Tanya Ko’s willingness to work together toward the creation of the compressed, intense, emotionally chilling poem “Comfort Woman” impressed me greatly and resulted in a work that has moved to tears many of those who have read or heard it. By giving voice to one comfort woman, she speaks for all those who have suffered from or object to the use of sexual violence for political and personal oppression.”                                                    – John Rosenwald , Co-editor, Beloit Poetry Journal

 

          “美서 詩 창작활동… 원동력은 공감이죠”

“미국에서 출판되는 책 중에서 번역서는 3%, 문학 번역서는 0.7%일 뿐입니다. 이 0.7% 안에 한국 문학은 얼마나 될까요?”

영어와 한국어로 시를 쓰는 재미 1.5세대 고현혜(타냐 고·51·사진) 시인은 미국에서 느끼는 한국 문학의 현주소에 대해 이런 질문을 던진다. 최근 국제PEN한국본부 주최로 열린 ‘세계한글작가대회’ 참가차 한국을 찾은 그는 25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던진 질문에 “작가와 독자의 만남이 중요하다, 한국의 문화와 역사가 깊은 고전을 번역하라, 소셜네트워킹을 잘 써라”라는 3가지 조언을 전했다. 

이는 그가 번역 문학 전문 출판사 화이트 파인 프레스 대표이자 편집자인 데니스 맬로니에게 ‘어떻게 하면 한국 문학을 프로모션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해 얻은 의견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고 시인은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내고, 궁금증을 일으켜라’라는 자신의 체험에서 얻은 조언도 전했다. 

열여덟 살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하루아침에 낯선 곳에 떨어진 자의 갈등, 문화적 충격을 시로 쓰다 1987년 스물세 살에 ‘크리스천 문예’ 시 입선으로 등단했고, 마흔 살에 안티오크대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하면서 본격적인 시 작업에 나섰다. 그는 미국 시인도 게재가 쉽지 않은 전통의 시 잡지 빌로이, 문예지 래틀, 컬처 위클리 등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시가 편집자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공감’과 ‘궁금증’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2013년 미국에서 발표한 위안부 문제를 다룬 시 ‘푸른 꽃’은 미국 시단에서 큰 공감을 일으켰고 “뇌리에서 절대 지워질 수 없도록 강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어로 시를 쓸 때도 여보, 한, 엄마같이 감정적으로 영어로 대체가 어려운 단어는 그냥 한국어로 쓴다”는 그는 “사람들이 궁금하면 찾아보더라”고 설명했다. 

그는 23일엔 서울 교보문고 영등포점에서 지난 7월 국내 출간된 시집 ‘나는 나의 어머니가 되어’ (푸른사상) 낭독회도 가졌다. 그의 시는 일상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담아내면서도 순간순간의 진실을 정확하게 짚어내기에 쉽게 읽히면서도 그 감동은 깊다. 그는 시를 통해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이제 3남매의 엄마가 된 그가 엄마를 떠올리며 자신을 도닥이는 표제작도 그렇다. 

‘바쁜 아침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서는 뒷모습을 보고/ 돌아와 어수선한 부엌에 서면/ 엄마가 그립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이 그립다/ 기름기 자르르 흐르는 흰 쌀밥에/ 가시 발려 올려지는 생선구이/ 따스한 국 한 그릇 (중략) 나는 나의 어머니가 되어/ 내 부엌에서/ 나의 밥상을 차린다/ 고소히 익어가는 밥 냄새/ 알맞게 구워지는 생선/ 따스히 덥혀진 국의 불을 끄며/ 나는 나의 어머니가 되어/ 아직 어린 내 영혼을 먹인다.’